월가가 보는 반도체 싸이클 바닥은 언제?
반도체 싸이클 저점은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과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하락할 때라는 월가 분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다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수요 감소로 인해 실적 전망치를 낮췄지만 이는 PC·무선인터넷에 집중된 것이며 데이터센터·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하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전방산업에 저사양 반도체를 납품하는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까지 하향돼야 반도체 싸이클이 저점에 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28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 주가의 종합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최근 1년간 10% 하락한 가운데 PC·무선인터넷 향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하락폭은 더 컸다. 대표적으로 PC용 CPU 시장에서 존재감이 큰 인텔과 AMD는 1년간 주가가 각각 47%, 36%씩 하락했으며 퀄컴도 주가가 28% 떨어졌다. 반면 차량용이나 산업용 반도체를 제조하는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들은 비교적 낙폭이 작았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같은 기간 주가가 0.44% 상승했으며 NXP반도체는 주가가 6.51%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들도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다넬리 씨티 연구원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공공 클라우드 기업들이 실적을 받치고 있었던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도 수요가 점점 더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와 산업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NXP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촉발한 공급망 경색으로 수요 둔화가 더디게 나타났지만 향후 수요가 더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넬리 연구원은 나아가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 아날로그 디바이시즈와 같은 기업들이 실적 전망치를 낮출 때가 반도체 싸이클이 바닥을 찍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아날로그디바이시즈와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를 포함해 모든 반도체 기업들이 실적 전망을 낮추고, 지금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평가받을 때 반도체주의 바닥을 볼 거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업황 부진이 끝나면 주당순이익(EPS)이 크게 반등할 마이크론, 온세미컨덕터, 글로벌파운드리, AMD와 같은 기업들에 투자하기를 선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해당 기업들에서 더 큰 주가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는 사양은 낮지만 다양한 제품군에 칩을 공급하고 있어 ‘반도체 산업의 슈퍼마켓’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전방산업이 다각화돼 있어 수요 둔화에도 비교적 실적이 안정적이다. 아날로그 디바이시즈 역시 산업 자동화, 계측 및 측정, 항공·우주·국방, 건강관리 등 제품의 용처가 다양하다. 차량용 반도체를 제조하고 있긴 하지만 비중이 20%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약 50%)에 비해 낮다. 두 기업은 최근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1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발표했는데, 월가의 전망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유사한 수준이었다. 주가는 두 기업 모두 최근 2년간 14%씩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