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발 ‘꽃샘추위’ 갇힌 IPO…셈복 복잡해진 기업들

“기업공개(IPO)에 나서느냐, 아니면 죽느냐다.” 최근 새 벤처기업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다.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벤처캐피털(VC)에서 투자를 받기 쉽지 않은 탓이다. 여기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여파까지 찬물을 끼얹었다. 일부 벤처·스타트업들은 도산 위기 속에 IPO를 서둘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씨앗’ 자랄 돈이 준다

15일 KB증권과 스타트업레시피에 따르면 지난달 스타트업 투자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78% 감소한 282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인 1월과 비교해도 10% 감소한 규모다. 비상장 시장 전체로 확대해 보면 2월 투자 유치 금액이 7182억 원으로 전년 대비 70.6%, 전월 대비 65.6% 줄었다.

신규 투자 유치금액뿐만 아니라 투자 건수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투자건수는 90건 미만으로 전월과 비슷했지만, 1000억 원 이상 대형 투자 유치건은 단 2건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초기 단계 투자 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신규 투자 감소세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스타트업들의 어려운 투자 유치 환경이 지속하고 있다.

이수경·성현동 KB증권 연구원은 “시리즈 C 이상 대형 딜과 프리(Pre)-IPO 건이 대폭 감소하며 투자사가 회수 후 다시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VB 파산이 국내 벤처·스타트업 시장의 심리 위축을 불러왔다. 금융시장 경색이 벤처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IPO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없어 보여도 중장기적으로는 상장할 기업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프리-IPO 단계에 있는 SSD 컨트롤러 반도체 기업 파두는 이달 10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접수했다. 이 회사는 프리-IPO로 120억 원을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1조2000억 원을 인정받았지만,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 IPO 시장에서 제대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관 수요예측을 마친 LB인베스트먼트와 15~16일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면역치료제 개발 기업 지아이이노베이션도 SVB 사태 후폭풍 속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IPO 두드리나

반면, 오히려 SVB 사태가 IPO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IPO 업계에선 SVB의 뱅크런으로 VC들이 안전자산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VC 입장에선 신규 투자를 줄이고, 기존 투자는 엑시트(자금회수)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엑시트를 하려면 다른 VC나 투자자가 투자지분을 사줘야 하는데, 투자심리 위축으로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IPO 말고는 엑시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벼랑 끝 전술’로 IPO에 빠르게 나설 수 있다. 기업이 VC에서 투자금을 받지 못하면 경영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투자금 확보를 위해 IPO에 서두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사업 초기 막대한 투자금이 반드시 필요한 바이오 기업들이 IPO 타이밍을 빨리 가져가며 상장 예비심사 청구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돈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며 “시장 위축으로 돈을 끌어당길 때가 없다면, 상장하지 않으면 망하니 상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SVB 사태로 IPO 시장에 영향은 있겠지만, IPO 증가와 감소 중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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