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조각투자, 연초부터 자본시장 달군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들이 연초부터 투자계약증권(조각투자) 발행에 주력하고 있다. 회사가 보유한 고가 작품을 증권화한 후 지분을 개인 등 다수의 투자자에게 매매하는 형태로, 상품이 지난해 말 제도권에 편입돼 관련 사업을 정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 자회사 ‘투게더아트’는 금일부터 이달 23일까지 미술품 조각투자 발행을 위한 청약을 진행한다. 공모금액은 총 11억8200만원이다. 개인투자자 등 일반청약자에게 금액의 90%(10억6380만원), 투게더아트에 나머지 10%(1억1182만원)가 배정되는 구조다. 납입기일은 25일이다.

조각투자는 일종의 프로젝트 투자로 미술품 등 실물 기초자산을 증권화 한 상품이다. 회사는 미술품을 구매한 뒤 복수의 감정평가사·신용평가사 등에 의뢰해 작품 가격을 재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청약에 나선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신탁수익증권 기초자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제도권으로 편입됐고, 이에 힘입어 관련 사업은 연초부터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 소액 투자로 유명 화가 작품 일부 소유…수익률도 양호, 1년여 만 평균 146%

투게더아트가 이번에 발행하는 조각투자 상품의 기초자산은 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인 ‘호박'(2002)이다. 이 화가는 런던 테이트 모던·뉴욕 휘트니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현재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쿠사마 야요이 작품은 국내에서 수년째 낙찰총액 기준 상위 5등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투게더아트는 ‘호박’을 증권화 한 다음,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에 비례한 공유지분(소유권)을 나눠준다. 회사는 이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다가 가격이 오르는 시점에 차익을 남기고 투자자들에게 이를 배분한다. 매각 시기·방법 등은 투게더아트 주도로 결정된다. 총수익률이 108%를 넘을 경우 회사는 초과이익의 20%를 성과보수로 가져간다.

투게더아트 외에도 복수 기업이 조각투자 증권 발행에 나선 상태다. 코스닥 상장사 서울옥션 계열사인 ‘서울옥션블루’는 지난 12일부터 7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증권을 발행을 위한 청약을 진행하고 있다. 기초자산은 미국 팝아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앤디 워홀’이 1981년 제작한 ‘달러 사인(Dollar Sign)’이다. 청약은 오는 18일까지 진행된다.

미술품 투자는 수익률이 천차만별이지만 작품을 잘 선별하면 의외로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투게더아트는 지난 2018~2022년 총 36점을 매각해 평균 437일만에 총수익률 146%를 기록했다. 서울옥션블루는 지난 2020~2023년 총 123점의 작품을 매각해 평균 113일만에 총수익률 114%를 기록했다.

◆ 투게더아트·서울옥션블루 청약 결과, 국내 미술 투자 가늠자 될 것

투게더아트와 서울옥션블루의 청약 결과는 미술 투자에 대한 대중들의 투심을 파악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국내 벤처기업인 ‘열매컴퍼니’가 이보다 앞서 미술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1호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했지만, 이 상품은 청약증거금이 없어 이른바 ‘묻지마 청약’이 잇따랐다. 반면 투게더아트와 서울옥션블루는 청약단계에서 각각 청약금액의 100%에 해당하는 증거금을 납입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열매컴퍼니는 지난해 12월 말 12억3200만원 규모의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기 위한 청약을 실시했다. 기초자산은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2001)이다. 투게더아트가 현재 청약 중인 작품과 같은 시리즈이지만 제작연도·크기 등은 다르다. 이 상품은 청약 단계에서 경쟁률 650%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는 성공했다. 다만 이달 초 진행된 납입 단계에서는 오히려 전체 발행 물량 기준 18%의 실권주가 발생해 회사가 이를 전부 떠안았다.

조각투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도 여럿 있다. 이번 청약으로 발행되는 공유지분들은 거래소 등에 상장되지 않는다. 일반 증권보다 환금성이나 유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품인 것이다. 다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토큰증권발행(STO) 관련 법안 등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조각투자 지분은 장외 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유통될 수도 있다.

문화콘텐츠 투자업계 관계자는 “조각투자가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미술품 투자에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훨씬 쉬워졌다”며 “그러나 미술품은 가치평가를 진행하기 어렵고 유동성도 낮아 대중들의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술품 경매회사들의 이번 청약 결과는 현 시점에서 미술품 조각투자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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