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떠나는 中기업…에너지 이어 항공사도 자진 상폐 수순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권시장을 속속 떠나고 있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회계감독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정부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중국 기업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국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중국이나 홍콩 증권시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증권시장에서 자진 상장폐지를 한 대표적인 중국 기업은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이다.
디디추싱은 지난해 6월 30일 44억달러(약 5조60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중국 최대 정치적 행사였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디디추싱의 미국 증시 상장에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후 중국 당국은 ‘민감한 중국 내 정보가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대규모 제재와 벌금 추징에 나섰다. 1년간 이어진 고강도 압박에 결국 디디추싱은 올해 6월 자진 상폐를 결정했다. 이 사이 디디추싱 시가총액이 70조원 넘게 증발하면서 디디추싱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디디추싱 이후 미국에서 자진 상폐를 결정하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2일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과 자회사인 상하이석유화공(시노펙상하이),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 중국알루미늄, 중국생명 등 5개 기업이 공시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자진 상폐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의 자진 상폐 추진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들어 뉴욕 증시 상장 중국 기업을 대거 상폐 예비 명단에 올리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SEC는 2020년 통과된 외국기업책임법(HFCAA)을 근거로 미 증시에서 상폐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 2020년 통과된 HFCAA는 자국 회계기준을 3년 연속 충족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자국 기업들에 미국 금융당국에 회계정부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SEC는 지난 3월 5개 업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 증시에 상장된 총 159개의 중국 기업을 잠재적 퇴출 명단에 올렸다. 여기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를 비롯해 바이두, 소후닷컴, 웨이보, 비리비리, 징둥 등 중국 대표 기업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중국 동방항공과 남방항공이 조만간 미국 증시 자진 상폐 결정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두 항공사 모두 중국 국무원의 국유자산 감독관리위원회(SASAC)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고객 정보 등 중국 당국이 미국에 넘기기 싫어하는 데이터를 대거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방대한 중국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 빅테크들도 미 증시 자진 상폐 후보들로 거론된다.
알리바바가 최근 홍콩 증시에서도 미국 증시에 준하는 ‘주요 상장(primary listing)’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 증시 상폐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 증시에서 ‘주요 상장’을 하고 홍콩 증시에서는 보조적인 수준의 ‘2차 상장(secondery listing)’을 해놓은 상태인데 홍콩에서도 ‘주요 상장’으로 변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