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권력서열 3위 펠로시 대만 방문…대만해협 긴장 최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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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 반발에도 결국 2일 대만 땅을 밟았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에 대만을 찾은 미국 최고위급 인사다.
중국은 즉각 대만을 포위하는 대대적 무력 시위를 예고함에 따라 대만 해협 긴장이 고조되면서 ‘신냉전’으로 불려온 미중관계는 당분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이 탑승한 C-40C 수송기가 이날 밤 10시44분께(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했다.
펠로시 의장은 공항에 도착한 직후 낸 성명에서 “미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은 대만의 힘찬 민주주의를 지원하려는 미국의 확고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천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대만 방문은 공산국가인 중국에 맞선 미국의 민주주의 수호 차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 총통실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문을 통해 대만-미국 파트너십을 심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환영했고, 대만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바위처럼 단단한 지지를 보여주며 대만-미국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 및 오찬, 입법원(의회)과 인권박물관 방문, 중국 반체제 인사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4~5시께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이뤄진 이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정에서 중국과 미국 군용기가 극한 대치를 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펠로시 의장 일행을 태운 C-40C 수송기는 말레이시아에서 이륙해 남중국해를 경유해 대만으로 향하는 항로 대신 오른쪽으로 다소 우회했다. 미 해군은 대만과 멀지 않은 필리핀해에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등 전함 4척을 전개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반면 대만을 자신의 영토로 주장해온 중국 정부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반드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함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후과는 반드시 미국과 대만 독립 분열 세력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만으로 중국을 제압하려고 시도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끊임없이 왜곡하며 대만과의 공식 왕래를 강화해 대만 독립·분열 활동을 뒷받침했다”며 “이것은 매우 위험한 불장난으로, 불장난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타 죽는다”고 맹비난했다.
중국은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형태로 전방위적 ‘무력 시위’에 나설 것임을 공언했다.
대만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스이 대변인은 2일 밤부터 대만 북부·서남·동남부 해역과 공역에서 연합 해상·공중훈련, 대만 해협에서 장거리 화력 실탄 사격을 각각 실시하고, 대만 동부 해역에서 상용 화력을 조직해 시험 사격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영 통신 신화사는 대만을 둘러싸는 형태로 설정한 구역의 위·경도를 소개하면서 인민해방군이 4일 12시부터 7일 12시까지 해당 해역과 공역에서 중요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을 실시할 것이라며 이 기간 선박과 항공기는 상술한 해역과 공역에 진입하지 말라고 통지했다.
중국 국방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중국 인민해방군은 일련의 표적성 군사행동으로 반격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를 놓고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는 표현을 사용해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시 주석 입장에선 3연임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을 당 대회(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강력 경고에도 불구하고 감행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자신의 대만 문제에 대한 강인한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판단해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대만 주변을 포함한 중국의 군사 활동 증가를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라고 비난하며 대중국 견제에 동맹과 파트너를 규합해온 바이든 정부로선 긴장을 조성하는 도발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양상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에 대만은 군사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 차원에서 가치가 더해진 곳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이 추구하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서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다.
이번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한반도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앞으로 한국에 대한 미·중의 전략적 이해 관철 노력이 강도를 더할 경우 정부는 더욱 더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을 참여시켜 반도체 공급망 동맹(칩4)을 만든다는 구상 아래 한국에 8월 말까지 입장 통보를 요구했고, 중국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경우 북한의 핵실험 저지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는 더욱 산만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의 중국 견제 행보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1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2년 전 유혈 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다가 공안에 쫓겨났다.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이 시위대를 학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맞은 올해는 성명을 통해 공산당을 ‘억압 정권’이라고 비판했다.